SHIN-A MEMORIAL HALL
서울 중구 정동길 33
정동은 마치 시간을 멈춘 듯,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숨 쉬는 공간입니다. 이곳의 거리를 걷다 보면, 도심 속에서도 고즈넉한 돌담과 서양식 건물들이 차분한 정취를 자아냅니다. 그 길을 따라 서 있는 붉은 벽돌 건물, 신아기념관이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1930년대에 지어진 이 건물은 처음엔 미국 '싱거미싱' 회사의 한국지부로 사용되었고, 1963년 한국 최초의 상업 신문사 신아일보가 매입한 후 1975년에 3층과 4층을 증축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조치로 신아일보는 폐간되었고, 그 이후 경향신문에 흡수되었습니다. 현재 이 건물은 신아일보 창업주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으로 사용되며, 사무실과 상업시설이 함께 들어서 있습니다. 신아기념관은 대한민국 국가 등록문화재 제402호로 지정된 중요한 근대 문화유산입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의 건축기법이 잘 보존되어 있어 근대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민간 건축물로는 한국 최초로 지어진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서, 건축사적 의의를 지닙니다. 신아기념관의 역사는 100년에 가까운 세월 속에서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원래 '졸리하우스(Jolly House)'라는 이름으로 외국인 고문관들이 머물던 곳이었으며, 1930년대에 지하 1층과 지상 2층 형태로 지어졌습니다. 이후 1967년 신아일보가 본사로 사용하며 1975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신아기념관은 한국 언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만주 지역 포로를 지하에 수용하기도 했고, 미 국무부 산하기관 사무실로도 사용되었습니다. 1980년에는 신군부의 언론기관 통폐합 조치로 인한 언론 탄압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붉은 벽돌은 더욱 깊은 색을 띠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전합니다. 신아기념관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신아기념관 내부는 이제 전시와 일상의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과거의 상처가 남아 있는 공간이지만, 그 상처는 오래된 나무처럼 단단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과거를 이해하고, 감사함을 느끼며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갑니다.
덕수궁 돌담을 따라 이어진 길 위에는 대한제국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정동 거리가 품고 있는 역사의 흐름을 천천히 느낍니다. 격변의 시기였던 조선 개항기, 외교관들이 드나들던 공사관과 언론이 민중을 위해 목소리를 내던 곳, 근대 교육의 시작을 알렸던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자리했던 이곳은 대한제국의 중심지였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품고 있지만, 그 길을 걷는 사람들 사이로 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이야기가 피어나는 신아기념관과 정동의 길은 그렇게 이어집니다.